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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왜 영웅 척계광과 조선 선비 최부, 제주도와 도저는 귤 생산지로 유명 저장 석포항과 도저고성, 최부 표해록을 만나다

등록일
02.28
조회수
1476

항왜 영웅 척계광과 조선 선비 최부, 제주도와 도저는 귤 생산지로 유명  저장 석포항과 도저고성, 최부 표해록을 만나다


왜구가 창궐하던 고려 말과 조선 초. 명나라도 골머리를 앓았다. 16세기에 이르러 동남부 해안에 해적 출몰이 더욱 빈번해지자 명나라 조정은 척계광(戚继光) 장군을 파견한다. 1555년 본격적으로 항왜(抗倭) 작전을 수행한다. 10년 이상 꾸준히 해상 침투에 맞서 치열한 소탕 작전을 벌였다. 백성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낸 민족 영웅이었다. 


저장성 해안에 척계광 흔적이 많다. 최근 직항이 생긴 닝보(宁波)에서 동남쪽 약 100km 떨어진 바닷가에 석포어항(石浦渔港)이 있다. 명나라를 건국한 주원장은 해안 방어를 위해 관청을 설치했다. 군대가 주둔하고 주민이 늘었다. 600년 넘는 역사를 지닌 어촌이다. ‘중국문화답사기’로 유명한 작가 위추위(余秋雨)가 “살아있는 고진(活的古镇)”이란 감상을 남기기도 했다. 고기잡이 선박을 위한 평화로운 항구다. 왜구 근거지 규슈에서 조류를 따라 남하하면 직선으로 900km도 되지 않는다. 석포에 고성이 자리 잡은 이유다.


<사진 1. 석포고성 입구/척가군 깃발 벽화(위 왼쪽/오른쪽), 척계광/‘위진절양’과 척계광(아래 왼쪽/오른쪽)>

<사진 1. 석포고성 입구/척가군 깃발 벽화(위 왼쪽/오른쪽), 

척계광/‘위진절양’과 척계광(아래 왼쪽/오른쪽)>


언덕을 조금 오르면 넝쿨과 어울린 붉은 벽돌로 쌓은 성곽이 나온다. 방어를 위한 옹성 구조다. 깃발 ‘척(戚)’을 들고 진군하는 척가군(戚家军)과 칼을 든 왜적이 새겨져 있다. ‘저장 바다를 굳건하게 지킨다’는 ‘위진절양(威镇浙洋)’이 역사를 그대로 증명하고 있다. 얼핏 보면 ‘척’과 ‘위’가 비슷하다. 성벽을 오르니 바다를 향해 척계광이 늠름하게 서 있다. 산둥 출신으로 저장 해안을 안정시키고 북방 만리장성을 새로 축조하기도 했다. 평생 군인으로 산 민족 영웅다운 자태다. 성벽 건너편에서 보니 바다를 향해 서 있는 옆모습이 더욱 의연해 보인다. 


<사진 2. 관우 부장 주창/관제 관우/관우 아들 관평((위 왼쪽부터 순서대로), 용왕(아래)>

<사진 2. 관우 부장 주창/관제 관우/관우 아들 관평(위 왼쪽부터 순서대로), 용왕(아래)>


성 옆에 관제묘가 있다. 전쟁에 내몰린 군사는 언제나 두렵다. 신이 자신을 지켜준다고 생각하면 전투에서 용맹을 드러낼 수 있을까? 삼국지 영웅 관우다. 전쟁 중에도 읽었다는 사서 ‘춘추’를 든 관우 양쪽에 주창과 관평이 협시하고 있다. 바다나 강, 물이 많은 동네에 언제나 ‘굽어살피는’ 용왕도 있다. 관우와 용왕에게 의지해 두렵지 않았을까?


척가군은 독창적이고 강력한 전투 대형인 원앙진(鸳鸯阵)으로 유명하다. 소대장을 중심으로 맨 앞에 두 명이 방패를 든다. 세모꼴 병기를 엮은 창인 낭선(狼筅)을 양 옆에 배치하고 뒤에 장창(长枪)과 삼지창인 당파(镋钯)를 운용한다. 전투마다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11 명이 완벽한 팀이었다. 무엇보다 하나라도 무너지면 전체에게 책임을 묻는 강력한 군기를 바탕으로 했다. 


<사진 3. 석포고성 골목/행운과 장수를 주는 거북(위 왼쪽/오른쪽), 옷과 매듭/아편 연관 모습(아래 왼쪽/오른쪽)>

<사진 3. 석포고성 골목/행운과 장수를 주는 거북(위 왼쪽/오른쪽), 

옷과 매듭/아편 연관 모습(아래 왼쪽/오른쪽)>


평화가 오면 고성은 서민 주거공간이다. 골목은 좁고 저택이 이어진다. 포목점이던 조장(绸庄)에 예쁜 매듭이 인상에 남는다. 전장(钱庄)에 들어가니 동해 용왕의 아홉 번째 아들이라는 용귀(龙龟)가 물속에 앉아 있다. 동전을 던져 머리에 올리면 행운이 따라오고, 배에 올리면 백 세까지 장수한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아편 피우던 연관(烟馆)을 보니 청나라 말기 처참한 모습이 떠오른다. 


<사진 4. 조개껍질 공예/꼬막(위 왼쪽/오른쪽), 맛조개/새우/생선요리(아래 왼쪽부터 순서대로)>

<사진 4. 조개껍질 공예/꼬막(위 왼쪽/오른쪽), 

맛조개/새우/생선요리(아래 왼쪽부터 순서대로)>


조개껍질을 이어 매달았다. 하얀 바탕에 글자를 적었다. 바람 살짝 부니 재잘재잘 소리가 난다. 어촌이 보여주는 귀여운 물건이다. 큰길로 나가니 온통 해산물 식당이다. 수조에 있는 해산물을 주문하면 금방 요리로 나온다. 생선 조림과 볶음, 새우와 맛(조개), 무엇보다 싱싱한 꼬막은 맛도 좋아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넷이 먹었는데도 2만원 가량, 값도 저렴하다.


남쪽으로 100km 지점 도저진(桃渚镇)에 척계광 부임지 도저고성이 있다. 군대를 주둔시키고 훈련을 했다. 바다에서 10km 내륙에 있다. 도강(桃江)이 바다와 연결돼 있어 고성까지 쉽게 침범이 가능하다. 고성에서 바다까지 열세 개나 되는 섬이 있다. ‘하천에 있는 작은 섬’을 저(渚)라 한다. 도강십삼저라 부른다. 고성에서 보이는 높은 바위산에 오르면 한눈에 보인다. 


<사진 5. 고성에서 본 백주봉/임해대 누월동(위 왼쪽/오른쪽), 귤 싣고 가는 차량/도강십삼저(아래 왼쪽/오른쪽)>

<사진 5. 고성에서 본 백주봉/임해대 누월동(위 왼쪽/오른쪽),

귤 싣고 가는 차량/도강십삼저(아래 왼쪽/오른쪽)>


귤 싣고 가는 차량을 따라간다. 가파른 백주봉(石柱峰)이 나타난다. 높이가 140m가 넘는다. 산길 100m도 힘든데 수직으로 올라가기에는 너무 무리다. 20분 계단을 올라가 임해대(临海台)로 간다. 봉우리 사이를 빙 둘러 오른 후 다시 가파른 계단을 기어오른다. 몸 하나 빠져나갈 좁은 틈은 누월동(漏月洞)이다. 정상에 오르니 섬이 차곡차곡 모습을 드러낸다. 


왼쪽은 고성, 오른쪽은 바다. 왜구가 배를 몰고 들어오자 전투가 벌어졌다. 탐욕에 눈먼 왜구가 섬을 헤치고 진군했다. 해전에 능숙한 왜구가 고성 가까지 오기를 기다렸다. 1560년 척계광이 지휘하는 척가군은 왜구를 전멸시켰다. 겨울에 갔더니 조금 썰렁하다. 섬마다 꽃 피면 환상적이라고 한다. 풍광을 확인하러 다시 가고 싶어진다. 이름처럼 복숭아꽃이 필까? 아마 봄이면 유채가 흐드러지게 피지 않을까?


<사진 6. 시내 식당에서 먹은 가지/고기 볶음(위 왼쪽/오른쪽), 두부/채소(아래 왼쪽/오른쪽)>

<사진 6. 시내 식당에서 먹은 가지/고기 볶음(위 왼쪽/오른쪽),

두부/채소(아래 왼쪽/오른쪽)>


도저고성은 남루하다. 역사적 가치만큼 아직 관광지로 유명하지 않다. 행정 소재지가 있는 시내와 5km 떨어져 있는 식당으로 간다. 평범한 요리를 주문했다. 두부, 가지, 돼지고기, 죽순, 채소 모두 볶았다. 재료가 신선해 게 눈 감추듯 포식한다. 아직 고성 내 숙박 장소도 없다. 도저고성은 2017년 국가급풍경구로 비준을 받았다. 2년이나 지났는데도 여전히 손때가 묻지 않았다. 


고성은 세 방향에 대문이 있고 북쪽은 산이다. 호수로 성을 감싸고 있다. 성벽에 척가군 깃발이 나부낀다. 말을 탄 척계광 조각상은 맹장의 풍모다. 동문으로 들어가니 자그마한 옹성이 있다. 성문도 아담하다. 성벽을 뚫고 나온 나무가 앙상하다. 명나라 당시 성벽은 아닌 듯하다. 오른쪽에 관공묘가 있다. 완전히 방치된 모습이다. 지도에는 고루와 도교 삼성전(三圣殿) 위치도 있는데 찾을 수 없다. 새로 건축하려고 철거를 했나 보다.


<사진 7. 도저고성 척계광/공산당 당원 표지(위 왼쪽/오른쪽), 고성 동문/고성 골목(아래 왼쪽/오른쪽)>

<사진 7. 도저고성 척계광/공산당 당원 표지(위 왼쪽/오른쪽),

고성 동문/고성 골목(아래 왼쪽/오른쪽)>


랑택(郎宅), 류택(柳宅), 김택(金宅), 세택(谢宅), 오택(吴宅)이 보인다. 성 둘레가 1,300m 정도니 큰 성곽은 아니다. 그런데도 저택이 제법 많다. 랑택은 관리를 역임한 랑씨 8대손이 19세기 초에 건축됐다. 해방 후 정부가 징수해 곡식 창고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현대사를 거치며 많은 변화가 있었으리라. 공산당원 집이라는 선명한 표지도 보인다. 골목은 고풍스러운 모양을 그대로 담고 있다. 조금 손 보면 깔끔한 문화 거리가 생길 듯하다. 


성벽은 비교적 낮다. 성벽에서 보니 조공전(赵公殿)이 보인다. 관우와 더불어 도교 재신인 조공명을 봉공한다. 약간 떨어진 위치에 ‘유교적’인 문창전(文昌殿)도 있고 ‘불교적’인 관음당(观音堂)도 있다. 서민을 위한 종교는 다 있던 셈이다. 성벽 따라 봉화대에 오르니 한눈에 도강십삼저가 펼쳐진다. 의기양양 몰려오는 왜구가 손아귀에 들어온다. 포 한 문이 바다를 향하고 있다. 육박전을 치르기 전에 강을 따라 진입하는 왜구 선박을 매몰차게 타격한 포격이 있었음 직하다. 


<사진 8. 최부 표해록 비석/고성에서 본 도강십삼저(위 왼쪽/오른쪽), 고성 포/귤로 유명한 도저(아래 왼쪽/오른쪽)>

<사진 8. 최부 표해록 비석/고성에서 본 도강십삼저(위 왼쪽/오른쪽),

고성 포/귤로 유명한 도저(아래 왼쪽/오른쪽)>


성벽을 한 바퀴 돌아 마을로 다시 들어간다. 낡은 고성, 한적한 골목이다. 작은 정자가 하나 보인다. 2005년에 마을 주민이 세운 ‘중한민간우호비(中韩民间友好碑)’가 나타난다. ‘최부표해록(崔溥漂海录)’ 다섯 글자가 또렷하다. 조선 선비 최부는 15세기 성종 때 제주도에 부임했다가 부친상을 당한다. 고향 나주로 가다가 겨울 풍랑을 만난다. 최부와 일행 43명은 저장 동해안에 불시착했다. 왜구로 오인돼 고초를 겪고 우여곡절 끝에 겨우 신분을 증명한다. 수도 베이징을 거쳐 연행 길을 따라 한양으로 귀국한다. 풍랑과 귀국까지 과정을 세세하게 기록한 ‘표해록’은 학문적 가치가 매우 높다. 외국인이 기록한 ‘중국 여행기로 최고’라는 중국 학자의 평가도 있다. 


기분 좋은 만남이다. 척계광이 도저에 오기 70여 년 전 최부가 왔다. 첫 심문을 받은 장소다. 이를 기억하고 마을 사람들이 비석을 세웠다. 역사가 남긴 흔적을 보노라면 ‘한중’은 서로 뗄 수 없는 나라라는 인증이 너무도 많다. 지금 소원해도 우호에 대한 ‘증거’가 남았다면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 제주도처럼 도저는 귤 생산지로 유명하다. 고성 밖에 귤 판이 열렸다. 중국에서 맛본 그 어떤 맛보다 달콤하다. 최부가 남긴 ‘조선’을 기억하는 도저는 우리에게도 향긋한 역사다. 






최종명 중국문화 전문가, 작가 및 강사  - 전 차이나TV 부사장, 2005년부터 중국 400여 개 도시 발품취재, 오마이뉴스 등 기고  - 한겨레 <차이나리포트>, EBS세계테마기행, 여행채널 TVIS 등 출연  - 한겨레 테마여행 동행작가 및 중국문화여행 기획인솔  - 중국역사와 문화에 관한 강의 (기업/학교/기관 등)  - 주요 저서: <꿈꾸는 여행, 차이나>(2009), <13억 인과의 대화>(2014), <민,란>(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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