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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붓글씨로 꾸민 마을 보고, 콩 안주에 ‘딸을 위한 술’을 마신다 - 서예가 왕희지의 흔적과 문학가 루쉰의 고향 사오싱을 찾아서

등록일
06.23
조회수
814

저장 사오싱(紹興)에는 서예의 성인으로 예우하는 왕희지(王羲之)의 서체로 가득한 마을이 있다. 문학가 루쉰(魯迅)의 고향으로도 유명하다. 문학과 예술의 도시 사오싱은 상하이에서 2시간, 항저우에서 1시간이면 도착한다. 최근 직항이 생긴 닝보에서도 1시간 30분이면 갈 수 있다. 대도시와 가까워 접근이 쉽다. 먼저 왕희지가 살았다는 서성고리(書聖故里)로 간다. 4세기 동진 시대 서예가로 유명한 왕희지는 산둥 린이(臨沂) 사람이다. 관리로 근무한 사오싱에서 오래 살았다. ‘천하제일행서(天下第一行書)’로 평가되는 난정서(蘭亭序)는 서예 초보자도 알 정도로 유명하다. 

<사진 1. 식당 요리 진열/굵은 국수/간장 볶음밥(위 왼쪽/가운데/오른쪽), 황위 요리 세트/카오위(아래 왼쪽/오른쪽)>

<사진 1. 식당 요리 진열/굵은 국수/간장 볶음밥(위 왼쪽/가운데/오른쪽), 황위 요리 세트/카오위(아래 왼쪽/오른쪽)>


서성고리에 도착하니 점심시간이다. 패방 앞 식당으로 찾아간다. 저장 지방의 요리는 대체로 향이 강하지 않고 담백한 편이다. 요리 재료를 한꺼번에 담아 놓아서 눈으로 보고 주문할 수 있다. 끓이거나 볶기만 하면 된다. 바다와 가까운 편이라 생선도 싱싱하다. 조기인 황위(黃魚) 요리가 눈에 띈다. 조기를 파프리카, 양파와 파 등과 함께 진열돼 있다. 굵은 면발에 채소를 넣고 볶은 국수도 입맛에 딱 맞는다. 생선을 살짝 튀긴 후 양파와 함께 쪄서 먹는 카오위(烤魚)를 간장 볶음밥과 곁들여 먹으니 꿀맛이다. 

<사진 2. 난정서/왕희지와 담장 서예(위 왼쪽/오른쪽), 담장 서예/담장 서예/오봉선(아래 왼쪽/가운데/오른쪽)>

<사진 2. 난정서/왕희지와 담장 서예(위 왼쪽/오른쪽), 담장 서예/담장 서예/오봉선(아래 왼쪽/가운데/오른쪽)>

 

마을로 들어서니 거위가 놀았다는 도랑인 임아지(臨鵝池)에 배 한 척이 떠 있다. 까만 덮개를 씌운 오봉선(烏篷船)이다. 비가 자주 내리는 수향의 교통수단이다. 왕희지 최고의 작품인 난정서가 두루마기 모양으로 만든 돌에 새겨져 있다. 난정 연회에 참석한 명사들의 시를 모아 만든 책에 쓴 서문이다. 국보급에 가까운 명필이지만 진위 논란이 있어 아쉽다. 골목으로 들어서니 담벼락에 명필의 손놀림으로 빚은 작품이 가득하다. 회백색이 바랜 담장과 어울린 검은 붓글씨가 마을을 품격 있게 수놓고 있다. 

<사진 3. 묵지 연못/서예 연습 아이들(위 왼쪽/오른쪽), 묵지/담장 서예(아래 왼쪽/오른쪽)>

<사진 3. 묵지 연못/서예 연습 아이들(위 왼쪽/오른쪽), 묵지/담장 서예(아래 왼쪽/오른쪽)>


묵지(墨池)라 불리는 연못이 있다. 왕희지는 일곱 살부터 서예를 배우기 시작했다. 10년이 지나 부친이 전해준 비장의 필법으로 연못 옆에서 온종일 연습을 했다. 여명이 떠오를 때까지 밤새도록 쓰고 또 썼다. 붓을 연못 물에 헹궈가며 수도 없이 썼다. 이때 씻은 붓의 먹물이 온통 까맣게 변했다고 한다. 서예의 성인 정도는 돼야 이런 전설이 생기는 듯하다. 지금은 물고기가 헤엄치고 초록 물풀이 자라는 예쁜 연못이다. 붓글씨로 쓴 묵지가 노력하는 천재임을 증명하고 있을 뿐이다. 한 서예 가게에 붓글씨 연습하는 아이들이 있다. 어릴 때 신문지 위에 붓글씨 연습하던 생각이 난다. 세월이 변해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모습을 보기 어렵다고 생각하니 약간 서운하다. 

<사진 4. 라러우와 이불/생선 라라우(위 왼쪽/오른쪽), 라러우/빨래/차이위안페이 고거(아래 왼쪽/가운데/오른쪽)>

<사진 4. 라러우와 이불/생선 라라우(위 왼쪽/오른쪽), 라러우/빨래/차이위안페이 고거(아래 왼쪽/가운데/오른쪽)>


햇볕이 내리쬐는 날이다. 주민은 오랜만에 이불과 옷을 바깥에 내다 걸고 있다. 속옷까지 나뭇가지에 걸어 앙상한 가지를 대신하고 있다. 해가 반짝이는 날이면 축축한 남방 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진풍경이다. 남방에는 또 하나 재미난 풍광이 있다. 바로 라러우(臘肉)다. 음력 12월을 ‘라’라 한다. 한겨울에도 온화한 남방은 돼지나 생선, 거위나 오리, 닭을 바깥에 걸어 말린다. 약간 소금 처리를 하고 한동안 말린 후 보관했다가 1년 내내 요리를 해서 먹는다. 집마다 라러우가 무르익고 있다. 


마을 뒷산은 즙산(蕺山)이다. 예로부터 서원이 있었고 명나라 유종주(劉宗周)와 청나라 황종희(黃宗羲) 등 많은 문인을 배출했다. 1916년부터 11년 동안 베이징대학 총장을 역임한 차이위안페이(蔡元培)의 고향이기도 하다. 문이 닫혀 들여다보지 못해 아쉽다. 마오쩌둥(毛澤東)이 ‘학계태두(學界泰斗)’이자 ‘인세해모(人世楷模)’라고 칭찬했다. 교육계의 대가이자 세상의 모범이란 뜻이다. 이 글씨는 20세기의 유명 서예가인 사멍하이(沙孟海)의 필체다. 그러나 사오싱이 낳은 최고의 인물은 누가 뭐라 해도 루쉰이다. 


남쪽으로 2km 떨어진 루쉰고리(魯迅故里)로 간다. 왼손에 담배 연기를 뿜고 있는 담장에 있는 초상화가 루쉰(1881~1936)이다. 여느 다른 지방의 휘황찬란한 모습과 달리 흑백 판화 같은 분위기다. 태어날 때 이름은 저우장서우(周樟壽)였고 다시 저우수런(周樹人)으로 개명했다. 1919년 5·4운동 이후 작품활동을 하면서 어머니의 성을 따서 루쉰이라는 필명을 사용했다. 

<사진 5. 루쉰고리 입구/조거(위 왼쪽/오른쪽), 한림 편액/덕수당/덕지영형(아래 왼쪽/가운데/오른쪽)>

<사진 5. 루쉰고리 입구/조거(위 왼쪽/오른쪽), 한림 편액/덕수당/덕지영형(아래 왼쪽/가운데/오른쪽)>


먼저 조거(祖居)를 찾았다. 한림(翰林)이란 편액이 걸려 있다. 한림원에서 공직 생활을 한 할아버지가 살던 집이다. 대문을 지나면 덕수당(德壽堂)이 나온다. 손님을 접대하거나 혼례와 장례를 치르는 대청으로 나란히 의자 두 개가 놓여 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할아버지 초상화가 있고 아래에 두 명의 할머니인 손(孫) 씨와 장(蔣) 씨가 있다. 은덕과 행복이 오래 지속되라는 뜻의 덕지영형(德祉永馨)이 보인다. 


루쉰이 태어나고 살던 고거(故居)는 서쪽에 있는 집을 사서 건축했으며 구조가 엇비슷하다. 할아버지의 후광을 받아 부유했다. 수재였던 아버지가 번번이 시험에 낙방하자 관원에게 손을 쓰다가 들통났다. 할아버지는 투옥되고 아버지는 병으로 사망하자 가세가 기울었다. 뒷문으로 나가면 루쉰이 어린 시절 뛰어놀던 백초원(百草園)이 나온다. 여름에는 나무 그늘에서 더위를 피했고, 겨울이면 눈밭에서 새를 잡기도 했다. 귀뚜라미도 잡고 뽕나무 오디를 캐고 복분자를 따고 하수오(何首烏)를 뽑으며 놀았다. 백초원에서 놀다가 삼미서옥(三味書屋)으로 공부하러 가는 길을 회고하기도 했다. 거리로 나와 길옆에 졸졸 흐르는 도랑의 돌다리를 건너면 검은색 대나무로 만든 문이 나타난다.

<사진 6. 백초원/삼미서옥 입구(위 왼쪽/오른쪽), 삼미서옥/지평전/삼도서첨(아래 왼쪽/가운데/오른쪽)>

<사진 6. 백초원/삼미서옥 입구(위 왼쪽/오른쪽), 삼미서옥/지평전/삼도서첨(아래 왼쪽/가운데/오른쪽)>


대청인 사인당(思仁堂)을 지나면 높은 담장이 나타난다. 담장 사이 문을 따라 들어가면 서당인 삼미서옥이 보인다. 훈장이던 수경오(壽鏡吾, 1849-1930) 선생의 초상화가 놓여 있다. 종지와 붓이 있고 반질반질한 벽돌인 지평전(地坪磚)이 있다. 벽돌을 이용해 서법을 익히도록 제자를 훈련했다. 엄하기로 유명했던 사숙에서 루쉰은 학문을 익혔다. 왼쪽 구석에 루쉰이 앉았던 자리가 있다. 루쉰이 책을 읽을 때 스스로 만들었다는 삼도서첨(三到書簽)에 대한 소개도 있다. 종이를 접어서 만든 책갈피에 독서삼도심도안도구도(讀書三到心到眼到口到)를 썼다. '책은 마음으로 읽고, 눈으로 읽고, 입으로 읽어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눈이나 입보다 마음으로 숙지해야 한다는 교훈이다. 후학 양성에 신명을 바친 송나라 성리학자 주희(朱熹)의 ‘훈학재규(訓學齋規)’에 나오는 말이다.


고거 옆 필하풍정원(筆下風情園)에 사오싱을 대표하는 술인 황주(黃酒)가 있다. 특별히 딸이라는 이름이 붙은 여아홍(女兒紅)이라 부르는데 재미난 전설이 있다. 옛날에 재봉사가 있었는데 아들을 낳으면 지인들과 축하하려고 항아리에 술을 담근다. 공교롭게 딸이 태어나자 실망한 재봉사는 계수나무 밑에 항아리를 묻어버린다. 총명한 딸은 자라면서 아버지로부터 재봉 기술을 배우는데 기술이 빼어나 가업이 날로 번창한다. 딸과 제자의 결혼식 날 까맣게 잊었던 항아리가 생각난다. 술을 퍼내니 빛깔이 짙고 향기가 코를 찌르고 맛이 기가 막히게 좋았다. 그래서 ‘딸을 위한 술’이라고 불렀다. 소문이 나자 너도나도 딸을 낳으면 술을 담그게 됐다. 도자기에 담아 판매한다. 삼미서옥과 혼례 장면을 보며 마시는 술은 더욱 흥취가 돋는다.

<사진 7. 여아홍/공을기 가게(위 왼쪽/오른쪽), 혼례 도자기/삼미서옥 도자기/회향두(아래 왼쪽/가운데/오른쪽)>

<사진 7. 여아홍/공을기 가게(위 왼쪽/오른쪽), 혼례 도자기/삼미서옥 도자기/회향두(아래 왼쪽/가운데/오른쪽)>


루쉰은 1919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공을기(孔乙己)’에서 봉건 의식에 머물던 유교 사상을 냉정히 비판한다. 과거에 오르지 못하고 공자의 후손이라 떠벌리는 인물을 통해 중국 사회에 채찍을 때린다. 행색은 거지 같고 읽은 책은 많다. 생계를 꾸릴 일은 하지 않고 잘난 체만 하니 비웃음의 대상이다. 언제나 따뜻하게 데운 황주를 마시며 회향두(茴香豆)를 안주로 한다. 루쉰 고향 어느 식당에 가더라도 회향두를 먹을 수 있다. 일반 콩에 비해 굵은 누에콩인 잠두(蠶豆)에 약재 냄새를 풍기는 회향과 계피를 넣고 소금으로 맛을 낸다. 황주와 궁합이 맞아 사오싱 사람은 누구나 즐겨먹는다. 여행객도 따뜻한 황주 한 모금 마시고 회향두를 씹으며 루쉰을 떠올린다. 그냥 가면 섭섭하다. 





최종명 중국문화 전문가, 작가 및 강사  - 전 차이나TV 부사장, 2005년부터 중국 400여 개 도시 발품취재, 오마이뉴스 등 기고  - 한겨레 <차이나리포트>, EBS세계테마기행, 여행채널 TVIS 등 출연  - 한겨레 테마여행 동행작가 및 중국문화여행 기획인솔  - 중국역사와 문화에 관한 강의 (기업/학교/기관 등)  - 주요 저서: <꿈꾸는 여행, 차이나>(2009), <13억 인과의 대화>(2014), <민,란>(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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