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TRAVEL

밤이 깊어질수록 더욱더 진국으로 변하는 숯불 위의 두부 전골
‘천년 고도’와 ‘금수강산’이라 자랑하는 저장 서부 넨바두고진

등록일
02.09
조회수
653

저장성 서쪽에 장산(江山) 시가 있다. 상하이에서 고속철로 2시간 30분이면 도착한다. 기차역에서 남쪽으로 60km 떨어진 거리에 독특한 이름의 옛 마을이 있다. 버스를 타고 30분가량 지나니 만추의 들판과 봉긋한 봉우리가 나타난다. 2010년 8월 유네스코는 6곳의 ‘중국 단하(丹霞)’ 지형을 묶어 세계자연유산으로 올렸다. 그중 하나인 강랑산(江郎山)이다. 지금은 도로가 잘 뚫렸지만, 옛날에는 험준한 선하령(仙霞岭)이 가로막고 있었다. 


<사진 1. 들판과 강랑산/넨바두(왼쪽 위/아래), 강랑산 봉우리/넨바두고진의 객잔(오른쪽 위/아래)>

<사진 1. 들판과 강랑산/넨바두(왼쪽 위/아래), 강랑산 봉우리/넨바두고진의 객잔(오른쪽 위/아래)>


당나라 시대인 878년에 황소의 민란 군대가 고개를 넘어 남쪽으로 이동했다. 수십만 명이 움직였으니 자연스레 고갯길이 열렸다. 70km에 이르는 선하고도(仙霞古道), 북송 시대에 44개의 마을을 조성했다. 그중 28번째 마을이라고 넨바두(廿八都)라 불리는 고진이 있다. 입구 바위에 새긴 입 구(口)처럼 보이는 글자는 ‘이십’을 뜻하는 입(廿)이다. 객잔에 들어가는데 ‘천년 고도, 금수강산’이라 쓴 글자가 보인다. 


최근 넷플릭스에 공개된 중국드라마 ‘겨우, 서른(三十而已)’의 여주인공 왕만니(王漫妮)의 고향이 ‘넨바두’다. 30살이 된 여주인공 3명이 상하이를 무대로 직장과 사업, 사랑과 결혼에 대한 솔직 담백한 내용을 담고 있어 중국에서 인기 폭발이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원작과 달리 상하이 인근 마을에서 촬영했다. 


<사진 2. 골목과 마두장/문화혁명 흔적(왼쪽 위/아래), 도랑과 황톳빛 담장/담장에 피어난 꽃(오른쪽 위/아래)>

<사진 2. 골목과 마두장/문화혁명 흔적(왼쪽 위/아래), 도랑과 황톳빛 담장/담장에 피어난 꽃(오른쪽 위/아래)>


마을을 휘감는 도랑 옆에 황토 담장과 검붉은 기와집이 보인다. 마을 안에는 하얀 담장과 마치 말머리처럼 뻗은 마두장(马头墙)이 높이 솟구쳐 골목이 좁아 보인다. 예로부터 저장에서 푸젠과 장시로 이동하는 길목이라 1만 명이나 살았다. 교류가 잦자 상업이 발달하고 이주한 주민이 많았다. 지방 사투리가 9종류가 넘고 성씨도 130개에 이를 정도였다. 현대사의 질곡인 문화대혁명의 구호도 많이 남아있어 시선을 사로잡는다. 연분홍과 빨간 꽃이 피어난 담장도 인상 깊은 마을이다. 10월 말에 찾아갔는데도 여전히 봄날 같다. 


별의별 가게와 식당이 많다. 기름 먹인 종이로 만든 유지산(油纸伞)이 군청색과 연두색으로 나란하고 디자인이 예쁜 옷이 진열돼 있다. 샛노란 색감에 고고한 학이 그려진 옷이 마음에 쏙 든다. 풍경, 꽃다발, 도자기 피리, 호루라기를 파는 가게의 문구가 재미있다. 중국어로 깎아준다는 말은 ‘다저(打折)’다. 애국하면 다저해준다는 말 아래에 애국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쓰여 있다. 한자는 똑같지만, 발음이 다르다. 위는 ‘zhé’, 아래는 ‘shé’로 읽으라고 친절하게 써놓았다. ‘다서’라고 읽으면 밑지다, 손해보다는 뜻이다.


<사진 3. 유지산과 옷 가게/애국하면 깎아주는 가게(왼쪽 위/아래), 홍미/진공 포장된 퉁뤄가오(오른쪽 위/아래)>

<사진 3. 유지산과 옷 가게/애국하면 깎아주는 가게(왼쪽 위/아래), 홍미/진공 포장된 퉁뤄가오(오른쪽 위/아래)>


초록색 통에 가득 담아 홍미(红米)를 판다. 500g에 5위안(약 850원)으로 일반 쌀보다 2.5배나 비싸다. 찹쌀은 3.2위안이라고 비교해 놓았다. 우리나라 물가에 어두워 모르겠으나 아주 싼 듯하다. 중국에서 밥과 국수로 가끔 먹었다. 은은하고 엷은 빛을 띠는데 생쌀로 처음이라 살짝 만져본다. 바로 옆에 진공 포장된 떡이 있다. 징처럼 생긴 퉁뤄가오(铜锣糕)다. 찹쌀과 쌀을 섞고 약재를 가미해 만들며 새해 명절에 주로 먹는다고 한다. 구기자, 마, 연근, 고구마, 불이초, 대추 등이 들어간다는 정보는 나중에야 알았다. 포장 상태가 아니라 금방 만든 떡을 찾아서 먹어야지 생각했다. 결국 맛을 못 보게 된 셈이라 후회막급이다. 


<사진 4. 문창궁/스승과 제자를 형상화한 불(왼쪽 위/아래), 학당 모형/위태보살(오른쪽 위/아래)>

<사진 4. 문창궁/스승과 제자를 형상화한 불(왼쪽 위/아래), 학당 모형/위태보살(오른쪽 위/아래)>


사람 많은 마을, 종교 시설은 상설이다. 만세사표(万世师表) 공자를 봉공하는 문창궁(文昌宫)이 휘황찬란하다. 양쪽으로 솟은 기와지붕이 겹겹이 쌓였다. 날개를 펼친 듯 화려하다. 들보와 기둥은 섬세하고 품위 있는 목조 공예로 꾸몄다. 공자 사당은 생도를 가르치는 공간이기도 했다. 스승이 뒷짐을 지고 ‘공자 왈 맹자 왈’하니 공부하기 싫은 아이는 얼굴을 찡그리고 있다. 학당 분위기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모형에 유머를 담았다. 바로 옆에 관음전(观音殿)이 있다. 부처 불(佛)은 마치 스승과 예를 올리는 제자의 형상이다. 부처와 승려의 모습이면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진다. 우리나라 사찰에는 거의 없는 호법 장군 위태보살(韦驮菩萨)이 은빛 찬란한 갑옷을 입고 있다. 부처의 사리를 훔쳐 달아난 도둑을 끝까지 추적한 공로가 작지 않다. 천왕전의 미륵보살과 등을 맞대고 있어 자주 만나지만, 이렇게 반짝거리는 모습은 드물게 본다. 


<사진 5. 여특공 훈련소/여성 특공 복장(왼쪽 위/아래), 다이리와 여특공/암호 전송 기구(오른쪽 위/아래)>

<사진 5. 여특공 훈련소/여성 특공 복장(왼쪽 위/아래), 다이리와 여특공/암호 전송 기구(오른쪽 위/아래)>


비밀 요원인 특공(特工) 양성소가 있다. 장제스의 국민당은 공산당과 일본 특무와 대결하기 위해 첩보 조직을 만들었다. 그중 하나가 국민정부군사위원회조사통계국, 간단히 줄여 군통(军统)이라 부른다. 악랄하고 교묘한 작전으로 악명을 떨쳤다. 군통 총책임자 다이리(戴笠)는 불과 20km 떨어진 곳에서 태어났다. 넨바두의 저택을 아지트로 삼아 특별히 여성 특공만 훈련한 곳이다. 


다이리와 여성 특공이 함께 찍은 사진이 있다. 피비린내 나는 첩보전에서 활약한 인물도 많이 전시돼 있다. 미인계는 물론이고 정보 수집과 요인 암살 등에 투입된 여성 특공의 활약상이 깨알같이 적혀 있다. 암호 훈련이나 복장, 고문 기구, 권총도 전시돼 있다. 다이리는 공산당과 내전 중이던 1946년 3월 난징으로 가던 비행기를 탔다. 기상 악화로 인해 벼락을 맞고 추락해 사망했다. 


<사진 6. 계탐도/박쥐 조각 문양(왼쪽 위/아래), 용흥전장의 조각/병서양화의 조각(오른쪽 위/아래)><사진 6. 계탐도/박쥐 조각 문양(왼쪽 위/아래), 용흥전장의 조각/병서양화의 조각(오른쪽 위/아래)>


상인이 많이 살았다. 저택을 지어 마음껏 조각 예술을 뽐냈다. 사업이 번창하길 바라거나 지나친 욕심을 경계하기도 한다. 청나라 말기와 중화민국 시대 상인 강우홍(姜遇鸿)의 저택 입구에 신화에 나오는 탐(贪)이 조각돼 있다. 아주 탐욕스러워 눈에 보이는 물건은 먹고 또 먹어 치운다. 그래도 양이 차지 않자 태양까지 삼키려 했다. 지나친 욕심을 경계하려는 계탐도(戒贪图)다. 다른 문 위에 박쥐가 새겨져 있다. 박쥐를 편복(蝙蝠)이라 하는데 발음이 같아서 복을 준다고 생각했다. 박쥐가 있으면 상인 집이라고 보면 틀림없다. 


강우홍은 금융업에도 진출했다. 고진 중심지에 은행 업무를 하는 융흥전장(隆兴钱庄)의 목조도 화려하다. 예나 지금이나 돈을 움직이려면 건물에 멋을 부려야 하나 보다. 노자가 말한 성인이 동쪽에서 온다는 자기동래(紫气东来)는 상인에게는 성인도 곧 복으로 치환된다. 서양 물건을 팔던 병서양화(秉书洋货)는 바로크 양식을 적용해 건축했다. 대문 벽 원통 안에 새긴 조각은 굉장히 독특하다. 불감과 지붕, 바깥에 배치된 사람들이 마치 누군가를 환영하는 움직임이다. 많이 낡고 떨어져 나간 부분도 있는 듯하다. 원래 모습을 상상해 봐도 평범해 보이지는 않는다. 


<사진 7. 두부 전골/두부 전골을 데우는 숯(왼쪽 위/아래), 두부 만드는 장면을 그린 벽/야경(오른쪽 위/아래)>

<사진 7. 두부 전골/두부 전골을 데우는 숯(왼쪽 위/아래), 두부 만드는 장면을 그린 벽/야경(오른쪽 위/아래)>


거리에 조명이 하나둘 켜진다. 낮부터 봐둔 융흥재(隆兴斋) 식당을 찾았다. 전통 요리인 두부 전골이 탐이 났다. 식당 벽면에 두부를 제조하는 그림이 있다. 두부 축제를 할 정도로 유명하다. 두부 전골이 38위안(약 6,500원)으로 둘이 먹기 딱 좋다. 고소하고 담백한 두부에 돼지갈비와 죽순이 배합된다. 식지 않도록 숯불 위에 올려놓고 먹을 수 있다. 넨바두 두부 요리만의 개성이다. 시간이 지나도 더욱더 진하게 우러난다. 육수를 더 넣어도 된다. 깊어가는 밤, 진국으로 변한 두부도 여전히 진한 향기를 풍기고 있다. 





최종명 중국문화 전문가, 작가 및 강사  - 전 차이나TV 부사장, 2005년부터 중국 400여 개 도시 발품취재, 오마이뉴스 등 기고  - 한겨레 <차이나리포트>, EBS세계테마기행, 여행채널 TVIS 등 출연  - 한겨레 테마여행 동행작가 및 중국문화여행 기획인솔  - 중국역사와 문화에 관한 강의 (기업/학교/기관 등)  - 주요 저서: <꿈꾸는 여행, 차이나>(2009), <13억 인과의 대화>(2014), <민,란>(2015)



댓글창

0/ 500 byte

욕설, 상업적인 내용, 특정인이나 특정 종교 및 특정사안을 비방하는 내용 등은 예고 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전체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여러분의 한마디를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