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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최종명 작가의 ‘중국 음식 문화’]
오리알 넣고 죽간에 올라타 반죽한 면발, 완자와 함께 먹는 죽승면

등록일
04.13
조회수
420

오리알 넣고 죽간에 올라타 반죽한 면발, 완자와 함께 먹는 죽승면

- 광저우 시내 남쪽에 위치한 800년 역사를 지닌 사완고진


광저우 시내 남쪽 판위구(番禺区)에 800년 역사를 지닌 고진이 있다. 광저우 남역(南站)에서 택시를 타면 30분, 시내버스로도 1시간이면 도착한다. 남송 시대부터 마을을 이루고 살았던 사완고진(沙湾古镇)으로 하씨(何氏) 집성촌이다. 입구에 미식(美食) 지도가 예쁘게 그려져 있다. 간단한 먹거리를 파는 가게 위치를 자세하게 그렸다. 다른 지방에서 본 먹거리가 많다. 오로지 여기서만 맛볼 수 있는 먹거리가 있다면 좋겠다. 단체 관람 온 학생이 많다. 1,500만 명 넘는 대도시에 자리 잡고도 역사 문화가 풍성한 마을이다. 


<사완고진 서문/미식 지도(왼쪽 위/아래), 과거 기념 비석/사방당과 대종사(오른쪽 위/아래)>

<사완고진 서문/미식 지도(왼쪽 위/아래), 과거 기념 비석/사방당과 대종사(오른쪽 위/아래)>


네모 반듯하게 둑을 쌓은 연못인 사방당(四方塘)이 나온다. 하씨 사당인 대종사(大宗祠)가 반영돼 파란 하늘과 어울린다. 학생들이 입구에서 줄을 서서 입장할 태세다. 천천히 들어갈 생각에 사당 주위를 둘러본다. 1275년 처음 건축했다고 하니 정말 오래됐다. 광둥 일대에서 가장 규모가 웅장하며 보존 상태도 좋다. 연못과 사당 부근에 비석이 여러 개 세워져 있다. 주로 청나라 시대의 과거를 통과한 인물을 기념하는 비석이다. 동치 2년, 1863년 당시 상황을 기록한 비문을 읽어본다. 수도에서 치르는 회시(会试)에서 151등으로 진사가 됐다는 기록이 적혔다. 칙명을 받들어 세운다는 흠점(钦点) 글자도 보인다. 


<대종사 입구/유경당 편액(왼쪽 위/아래), 침당의 신위/대종사 문신(오른쪽 위/아래)>

<대종사 입구/유경당 편액(왼쪽 위/아래), 침당의 신위/대종사 문신(오른쪽 위/아래)>


붉은 바탕에 금빛으로 적은 대종사 글씨가 멋지다. 대문으로 들어서자 시서세택(诗书世泽) 패방이 딱 붙었다. 북송 시대 하씨 삼형제가 나란히 진사에 오른 경사를 칭송하기 위해 세웠다. 시경과 서경은 유교 경전이며 세택은 조상이 남겨준 은덕을 뜻한다. 뒤쪽의 삼풍유방(三风流芳)도 후세에게 남긴 가문의 영광을 자랑한다. 본당인 유경당(留耕堂)에 수많은 편액이 겹겹이 붙었다. 복판에 충효전가(忠孝传家)가 중심을 잡고 문과나 무과에 급제한 인물이 나올 때마다 편액을 걸어 조상에게 보고했다. 명나라 시대 예부상서(礼部尚书)를 역임한 인물을 표창한 대종백(大宗伯)도 있다. 명나라 시대는 재상 없이 6부의 장관인 상서가 최고 벼슬이었다. 예로부터 예부의 장관을 대종백이라 불렀다. 기둥도 가문의 명성을 기록한 문구가 줄줄이 내려가고 있다. 


제일 안쪽 침당(寝堂)에 신위를 봉공한다. 은빛 반짝이는 향로가 놓였고 위쪽에 화려한 용 문양이 펼쳐져 있다. 위에서 아래로 4대에 걸쳐 신위를 놓았다. 뒤돌아 나오니 열린 대문에 두 명의 문신(门神)이 나타난다. 용맹한 무장이 문 하나씩 지키고 있으니 나쁜 기운이나 잡다한 귀신은 감히 근접하기 힘들 듯하다. 


<옥허궁 입구/현천상제(왼쪽 위/아래), 거북인 현무를 밟는 대제/북극성 판자(오른쪽 위/아래)>

<옥허궁 입구/현천상제(왼쪽 위/아래), 거북인 현무를 밟는 대제/북극성 판자(오른쪽 위/아래)>


종사 바로 옆에 도관인 옥허궁(玉虚宫)이 있다. 국태민안(国泰民安)과 풍조우순(风调雨顺)을 큼지막하게 적었다. 도교에서 북방의 신인 진무대제(真武大帝)를 봉공한다. 음양의 교감과 만물의 변화를 관장하며 바람이나 비의 신이라 믿는다. 진무대제는 명나라 시대부터 백성의 신망을 받았다. 현천상제(玄天上帝)라고도 불린다. 전설에 따르면 천상에 모두 28개의 별자리가 있어 동서남북마다 7개씩 차지하고 있다. 서한 시대 사료인 ‘회남자(淮南子)’ 기록을 보면 괴수인 현무(玄武)가 북방을 지킨다. 대제의 발이 현무인 거북을 밟고 있다. 북극성을 상징하는 검은색 나무판자도 인상적이다. 


<정종죽승면/전교자(왼쪽 위/아래), 죽승면 소개 벽보(오른쪽 위), 죽승면(오른쪽 가운데/아래)>

<정종죽승면/전교자(왼쪽 위/아래), 죽승면 소개 벽보(오른쪽 위), 죽승면(오른쪽 가운데/아래)>


골목 담장에 별미를 소개하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가게마다 원조라는 정종(正宗) 깃발이 휘날린다. 광저우의 특색 먹거리인 죽승면(竹升面)으로 유명 요리 프로그램에도 소개됐다. 광둥 지역을 대표하는 국수라 해도 무방하다. 벽화를 보면 면발을 쫄깃하게 반죽하기 위해 죽간을 사용한다. 광둥어에서 간(竿) 발음이 불길하다고 승(升)으로 바꿨다. 면발에 오리알을 넣는 것도 비법이다. 넓고 긴 대나무에 올라앉아 이리저리 반동을 일으켜 반죽한다. 메뉴를 보니 함께 넣는 재료에 따라 두 종류가 있다. 소고기와 완자다. 혹은 완탕을 운탄(云吞)이라 한다. 운탄죽승면을 주문했다. 운탄은 부드럽게 한입에 쏙 들어가고 면발은 쫀득쫀득하다. 고소하고 바삭한 튀김만두인 전교자(煎饺子)와도 궁합이 맞다. 여러 명이 가지 않아 먹거리를 더 맛보지 못해 안타깝다. 국수 한 그릇, 만두 몇 개에도 배가 부르다.


<관우와 장비 문신/토지공과 토지파(왼쪽 위/아래), 토지복신/조상 사진 신위(오른쪽 위/아래)>

<관우와 장비 문신/토지공과 토지파(왼쪽 위/아래), 토지복신/조상 사진 신위(오른쪽 위/아래)>


대도시 광저우에 위치하지만, 민간신앙을 그대로 이어오는 고진이다. 문신은 사당이나 도관에만 있지 않다. 백성이 드나드는 문에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정월이면 전국의 대문에 문신이 새로 걸린다. 당나라 태종 이세민의 휘하 장군 중 진경(秦琼)과 울지공(尉迟恭)이 가장 많다. 그러나 지방마다, 집마다 다르다. 관우와 장비가 문을 지키고 있는 집이 나타난다. 삼국지 맹장이니 많을 듯해도 생각보다 보기 힘들다. 골목 귀퉁이에 붉은 바탕에 금빛으로 쓰고 향꽂이가 놓였다. 토지복신(土地福神)에 대한 기원이다. 토지를 관장하는 신이 복을 내려준다는 집념이 강한 나라다. 모퉁이에도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나란히 앉았는데 토지공(土地公)과 토지파(土地婆)다. 집안에는 고인의 사진을 신위처럼 놓고 향을 피운다. 지금도 ‘신과 함께’ 살아가는 마을이다.


<골목 고양이/미로 같은 골목(왼쪽 위/가운데), 문봉탑(왼쪽 아래), 진사 골목 입구의 벽화(오른쪽)>

<골목 고양이/미로 같은 골목(왼쪽 위/가운데), 문봉탑(왼쪽 아래), 진사 골목 입구의 벽화(오른쪽)>


골목이 미로처럼 복잡하고 넓기도, 좁기도 하다. 담장은 대체로 높다. 길바닥에 앉아 길을 반이나 차지한 고양이는 자기 땅이니 조심조심 걸어가라는 듯하다. 6면을 벽돌로 쌓은 3층 탑이 보인다. 1721년 청나라 강희제 때 세운 문봉탑(文峰塔)이다. 1층에 문창(文昌), 2층에 관우, 3층에 괴성(魁星)의 신상이 있다. 유불선 구분이 큰 의미는 없지만, 유교의 영역에 속한다. 옆에 서원이 있다. 가장이 아이를 데리고 서원에 가기 전에 탑 앞에서 분향하고 참배를 했다. 800년 역사에 70명이 넘는 진사(进士) 등을 배출한 땅이다. 진사리항(进士里巷) 골목도 있다. 입구에 스승은 부채와 책을 들고 앉았고 학생은 꿇어앉은 벽화를 그렸다. 골목에 살았던 하자해(何子海)가 명나라 초기인 1371년에 과거에 통과해 진사가 됐다.


<광둥음악관 확이옥/전조(왼쪽 위/아래), 확이옥 담장/지붕 신수/목조(오른쪽 위/가운데/아래)>

<광둥음악관 확이옥/전조(왼쪽 위/아래), 확이옥 담장/지붕 신수/목조(오른쪽 위/가운데/아래)>


특별한 볼거리는 건축물과 조형예술이다. 광둥음악관(广东音乐馆)의 2층 지붕이 독특하다. 양 쪽 끝에 부드러운 곡선의 담장이 있다. 바람이나 불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커다란 가마솥의 양끝 손잡이처럼 생겨 확이옥(镬耳屋)이라 부른다. ‘확’이 가마솥이다. 광둥 일대 전통 가옥이다. 관음보살의 넉넉한 귀처럼 생긴 겨울 방한모와 비슷해 관음두(观音兜)라는 별명도 있다. ‘두’는 에워싼다는 말이다. 모자 쓴 지붕이 일렬로 서 있는 듯하다. 


용마루도 각양각색의 조형미로 돋보인다. 지붕 위에서 집을 수호하는 신수(神兽)는 석조(石雕)로 마감했다. 벽돌을 소재로 조각하는 전조(砖雕)도 있다. 먼저 조각한 후 불에 굽는 방식이 보통이지만, 이곳은 벽돌에 직접 칼로 조각한다. 고급 기술이 아니면 어렵다. 인물의 눈매와 수염까지 디테일이 살아있어 마치 나무인 듯 착각이 든다. 목조도 있다. 기둥 사이를 연결하는 들보에 학, 사슴, 박쥐와 소나무와 구름이 실물인 양 생생하다. 문인의 향기가 풍기는 사완고진에서 대나무 반죽으로 만든 국수를 먹고 민가 건축에 담긴 조형미에 감탄사를 남긴 하루다. 




최종명 중국문화 전문가, 작가 및 강사  - 전 차이나TV 부사장, 2005년부터 중국 400여 개 도시 발품취재, 오마이뉴스 등 기고  - 한겨레 <차이나리포트>, EBS세계테마기행, 여행채널 TVIS 등 출연  - 한겨레 테마여행 동행작가 및 중국문화여행 기획인솔  - 중국역사와 문화에 관한 강의 (기업/학교/기관 등)  - 주요 저서: <꿈꾸는 여행, 차이나>(2009), <13억 인과의 대화>(2014), <민,란>(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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