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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싸니족이 사는 푸저헤이 선인동촌에서의 힐링 - 푹 고운 육수가 일품인 쌀국수 먹고 반영이 아름다운 나룻배 유람

등록일
10.27
조회수
391

12월의 중국 남방은 낮에도 반소매를 입을 정도로 더운 날씨다. 카르스트 봉우리가 솟아 있는 아름다운 호반을 간직한 동네가 있다. 발음을 하면 할수록 정겹게 들리는 마을, 윈난 동남부에 위치한 푸저헤이(普者黑)다. 쿤밍남역에서 약 1시간이면 푸저헤이역에 도착한다. 역 앞에 소수민족인 이족(彝族) 남녀가 다정하게 서 있는 모습, 첫인상부터 생기발랄하다. 차를 타고 북쪽으로 30분 달려 선인동촌(仙人洞村)에 도착한다. 객잔을 1주일 전에 예약했다. 기사는 객잔 앞까지 친절하게 데려다준다. 


<사진 1. 푸저헤이역(왼쪽 위), 봉우리와 호수(오른쪽 위), 르자바이자/객잔 침대/발코니(아래 왼쪽부터)>

<사진 1. 푸저헤이역(왼쪽 위), 봉우리와 호수(오른쪽 위), 르자바이자/객잔 침대/발코니(아래 왼쪽부터)>


중국 서남부에 이족(彝族)이 많이 산다. 푸저헤이는 이족 말로 ‘물고기와 새우가 가득 담긴 호수’라는 뜻이다. 잔잔한 호수를 따라 습지가 형성돼 있으며 카르스트 봉우리와 동굴이 잘 어울리는 곳이다. 가을 하늘을 닮은 날씨는 청아하다. 호수 옆 객잔에 오기 잘했다. 침실과 화장실 모두 A급이고 발코니도 있다. 1박에 약 7만 원으로 가성비가 훌륭하다. 발코니에 앉아 커피 향을 맡으면 그냥 힐링 모드다. 호수를 가르며 오가는 배를 바라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객잔을 예약할 때 이름도 한몫했다. 르자바이자(日扎白扎), 이족 말로 하오산하오수이(好山好水)다. 


<사진 2. 핸드폰으로 본 선인동/선인동/호수 위의 연꽃잎(왼쪽 위부터 아래로), 호수 위의 나룻배(오른쪽)>

<사진 2. 핸드폰으로 본 선인동/선인동/호수 위의 연꽃잎(왼쪽 위부터 아래로), 호수 위의 나룻배(오른쪽)>


선인동까지 천천히 걸어간다. 5분가량 배를 타고 들어가서 10분 정도 동굴을 보고 나온다. 호수를 끼고 있는 동굴이라 기대했는데 다소 실망이다. 해발 1,400 m인 마을의 연 평균 기온은 사람이 살기 가장 좋다는 18 ℃다. 호수 위로 늦은 오후의 햇볕이 강렬하다. 빛을 품은 가을의 시든 연꽃이 고개를 숙이고 물속에 잠겼다. 잔잔한 수면에 녹은 빛의 반영은 심장이 쿵쿵한 울림을 준다. 외로이 쉬고 있는 나룻배 하나가 쓸쓸한 정취를 남기고 있다. 


푸저헤이 마을에는 이족의 갈래인 싸니족(撒尼族)이 거주한다. 마을에서 만난 할머니 모자가 다소 신기하다. 화바오터우(花苞头)라고 부르는데 꽃 자수에 은 구슬을 심었다.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죽은 연인이 일곱 빛깔 무지개로 변했다는 싸니족 전설이 있다. 연인을 그리워하며 쓰고 다니게 됐다. 어릴 때부터 배운 자수로 직접 만들어 쓰고 다닌다. 홍색, 녹색, 남색, 자색, 황색, 청색, 백색의 천을 사용해 만든다. 이족 말로 카스마(卡士玛)라 부르는 은 구슬을 붙여 모자를 단단하게 잡아준다. 반듯하고 품위가 있다. 앞부분은 삼각형 두 개가 붙은 꼴이다. 이를 채색 나비인 채접(彩蝶)이라 한다. 머리에 나비를 달고 다니는 민족이다. 볼수록 예쁘고 자신감이 넘치는 모자다.


<사진 3. 싸니족 모자/번구 식당/칭탕위(왼쪽 위부터 아래로), 화바오터우/스린칭 술과 안주((오른쪽 위/아래)>

<사진 3. 싸니족 모자/번구 식당/칭탕위(왼쪽 위부터 아래로), 화바오터우/스린칭 술과 안주((오른쪽 위/아래)>


식당 입구 나무 조각에도 걸려 있다. 홍등이 울긋불긋한 번구(贲古) 식당으로 들어간다. 마을 중심에 위치하고 규모도 꽤 크다. 촌장 집을 개조했다고 한다. 호수에서 잡은 물고기 요리를 주문한다. 담백하게 먹고 싶어 칭탕위(清汤鱼)를 주문하니 그야말로 지리 매운탕이다. 옆 가게에서 스린칭(石林情)을 한 병 샀다. 세계자연유산이자 지명인 스린이 불과 200km 정도 떨어져 있다. 오이와 채소, 삭힌 오리알인 쑹화단(松花蛋)으로 구색을 갖춘다. 이족 양념이 입맛에 잘 맞아 마음마저 푸짐한 푸저헤이의 밤이다. 마음에 쏙 드는 객잔, 푹신한 하룻밤이다. 


<사진 4. 쌀국수(왼쪽 위), 마차(왼쪽 아래), 싸니족 아주머니/쌀국수 육수/양념(오른쪽 위부터 아래로)>

<사진 4. 쌀국수(왼쪽 위), 마차(왼쪽 아래), 싸니족 아주머니/쌀국수 육수/양념(오른쪽 위부터 아래로)>


아침을 먹으러 다시 번구 식당으로 간다. 이족 스타일의 쌀국수는 어떨까? 이족 모자 쓴 아주머니는 소고기로 우려낸 국물에 면을 넣고 끓인다. 양념은 가짓수가 많으니 식성에 맞게 고르면 된다. 채소, 고추와 마늘, 후추도 조금 넣는다. 국물이 워낙 구수해 무얼 넣어도 최고의 맛이다. 역시 국수는 국물이 맛을 정한다. 새벽부터 준비한 아주머니의 정성이 행복한 맛의 비결이기도 하겠지. 면이 너무 많아 조금 포기하고 국물을 비운다. 약 2,000원으로 넉넉한 해장을 하니 몸도 마음도 한결 가볍다. 줄을 서서 기다리며 쌀국수의 입맛에 푹 젖는 이유가 있다. 식당 앞에 서 있는 마차를 탔다. 이제 호수 유람을 하러 간다.


마차는 마을을 벗어나 호수를 따라 또각또각 달린다. 20분 만에 푸차오탕(蒲草塘) 부두에 도착한다. 푸저헤이에는 나룻배로 일주하는 코스가 많다. 부두에서 출발해 약간 좁은 수로를 지나 은원교(银怨桥)를 지난다. 선인호로 접어드니 어제 묵은 객잔 발코니가 보인다. 물살 하나 없는 호수는 뱃사공이 젓는 노 하나에도 유유히 잘도 간다. 너무나 조용히 지나가니 가끔 함께 노를 젓는다. 수면에 붙은 연꽃잎은 시들었지만 줄기는 제 모양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푸저헤이는 연근 생산이 많다. 곳곳에 나룻배가 있다. 얼핏 보면 입 벌린 꽁치처럼 보인다. 고개를 숙이고 수면만 바라봐도 바깥 세상이 다 보인다. 눈앞에 나타나는 봉우리는 모두 데칼코마니로 변한다. 


<사진 5. 연꽃잎/나룻배/봉우리(왼쪽 위부터 아래로),  보신교(오른쪽 위), 정인교(오른쪽 아래)>

<사진 5. 연꽃잎/나룻배/봉우리(왼쪽 위부터 아래로),  보신교(오른쪽 위), 정인교(오른쪽 아래)>


호수가 넓어진다. 좁은 길로 접어들자 다리가 이어진다. 구멍이 셋, 반원이 타원으로 반영된 보신교(普新桥)를 지난다. 양쪽에 정자가 있는 정인교(情人桥)도 나타난다. 다리 오른쪽에 있는 마을이 푸저헤이촌이다. 푸저헤이 풍경구에는 크게 두 군데 마을이 있다. 다음에 오면 푸저헤이촌에서 묵고 ‘연인’처럼 다리를 건너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길이 넓어지고 봉우리 하나가 나타난다. 종착지인 칭룽산(青龙山) 부두가 시야에 나타난다. 1시간 정도 걸린다더니 20분을 더 여유롭게 유람했다. 


부두 앞 호숫물이 정말 맑다. 나룻배 타고 뱃사공이 열심히 쓰레기나 수초를 건져 올리고 있다. 카르스트 봉우리인 칭룽산으로 올라간다. 줄곧 가파르지만 30분이면 충분히 정상에 오른다. 한 번에 오르기 힘들어 잠시 쉬며 아래를 바라보니 뱃사공이 이동하며 여전히 작업 중이다. 위에서 봐도 호수는 거울처럼 깨끗하다. 


<사진 6. 호수 청소하는 나룻배/칭룽산에서 본 풍광(왼쪽 위/아래), 드라마 촬영지/푸저헤이 호수(오른쪽 위/아래)>

<사진 6. 호수 청소하는 나룻배/칭룽산에서 본 풍광(왼쪽 위/아래), 드라마 촬영지/푸저헤이 호수(오른쪽 위/아래)>


정상에서 바라보니 호수와 마을, 들판과 봉우리가 나란하게 펼쳐진다. 감탄사가 나올 만하다. 이런 풍광을 보려고 푸저헤이에 오는 듯하다. 사계절 서로 다른 모습일 터이니 오고 또 오고 싶다. 옆으로 이동해 반대쪽 전망대로 간다. 드라마 ‘삼생삼세 십리도화’가 촬영된 공간이다. 국내에도 소개된 로맨틱 판타지 드라마로 큰 인기를 끌었다. 도화(桃花)가 피는 계절에 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상상해본다. 산에서 내려와 호수를 따라 전동차를 타러 간다. 호수가 조금 낯설다. 배가 지나가며 반영을 가져갔다. 집들이 윗부분만 남고 싹둑 잘린 반영에 잠시 발걸음을 멈춘다. 


뱃길로 1시간 이상 걸렸는데 전동차를 타니 10분 만에 돌아온다. 마을로 다시 들어간다. 배 타기 전 마차로 이동할 때 점 찍어 둔 식당으로 향한다. 이상하게 생긴 조각상이 이목을 끌었다. 뚫린 두 눈과 큰 코, 이가 드러난 꽉 다문 입, 양 볼을 뚫고 칼이 꽂혀 있다. 토템 문화를 간직한 싸니족은 겨울이 시작되면 밀지제(密枝节)라는 축제를 연다. 남성이 모두 나와 가축을 잡고 제사를 지낸다. 보통 뒷산을 밀지산이라 부르고 집마다 자기만의 나무가 있다. 밀지는 ‘비밀스러운 나뭇가지’라는 뜻인가 보다. 자료를 찾아보니 밀지산에는 싸니족이 봉공하는 수호신을 만들어 둔다. 두 눈이 각각 해와 달을 닮은 수호신도 있다. 두 눈으로 낮과 밤을 지키고 있으니 어찌 감사할 일이 아니란 말인가?


<사진 7. 싸니족 수호신(왼쪽 위), 미둬푸(왼쪽 아래), 샤부샤부/호수의 노을/호수의 아침(오른쪽 위부터 아래로)>

<사진 7. 싸니족 수호신(왼쪽 위), 미둬푸(왼쪽 아래), 샤부샤부/호수의 노을/호수의 아침(오른쪽 위부터 아래로)>


선인제일가(仙人第一家) 식당으로 들어가 토종닭 샤부샤부를 주문한다. 고기를 먹자니 술에 대한 잠재의식이 발동한다. 주인에게 ‘번디더바이주(本地的白酒)’를 찾았더니 미둬푸(咪哆福)를 준다. 푸저헤이에서 만든 ‘동네 술’이다. 미둬는 보통명사처럼 남성을 부르는 말이란다. ‘남자 복’이란 뜻일까? 아저디(阿着底)는 이족 전설에 나오는 ‘아름다운 지방’이란 뜻이며 실제 지명이다. 맛도 나쁘지 않고 42 도 400 ml에 겨우 4천 원 수준이다. 


얼큰하게 취기가 올라 서둘러 객잔으로 돌아온다. 발코니를 여니 호수가 피로 물든 듯 붉다. 점점 어두워지더니 달도 뜬다. 눈이 붉어지면서 졸음이 쏟아지고 어느새 꿈나라로 간다. 순간 이동처럼 아침이 왔다. 파란 물결이 소리도 없이 지나간다. 노 젓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가끔 깔깔거리는 사람의 목소리만이 적막을 깬다. 푸저헤이는 정말 행복과 사랑이 가득 담긴 호수다.





최종명 중국문화 전문가, 작가 및 강사  - 전 차이나TV 부사장, 2005년부터 중국 400여 개 도시 발품취재, 오마이뉴스 등 기고  - 한겨레 <차이나리포트>, EBS세계테마기행, 여행채널 TVIS 등 출연  - 한겨레 테마여행 동행작가 및 중국문화여행 기획인솔  - 중국역사와 문화에 관한 강의 (기업/학교/기관 등)  - 주요 저서: <꿈꾸는 여행, 차이나>(2009), <13억 인과의 대화>(2014), <민,란>(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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