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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소설, 『미망』으로 만나는 개성음식문화

등록일
01.05
조회수
308

지금 우리는 개성에 갈 수 없다. 앞서 이 지면을 통해 개성 음식과 문화를 더듬어 보았지만  개성 음식의 실체를 알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제 과거 개성 음식에 대한 자료는 거의 남아 있지 않은데다가 개성 음식을 먹고 자란 세대의 개성 실향민들은 이미 연로하거나 대부분 별세하였기 때문에 구술 자료를 수집하는 부분에도 한계가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개성 음식의 발자취를 찾을 수 있는 매체가 있다. 개성 출신 작가가 쓴 개성 음식에 대한 수필이나 소설 같은 문학, 그리고 개성 음식을 기록한 요리책처럼 대중매체를 통해 개성 음식을 유용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이는 궁극적으로, 박제되어 있는 ‘과거의 개성 음식’이 아닌 지금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입장에서 만날 수 있는 ‘살아 있는 북한 개성 음식’이 될 것이다. 먼저 개성출신 작가인 박완서의 유명한 소설인 미망을 통해 개성음식을 소개하고자 한다. 


<사진 1. (왼쪽부터 순서대로) 제육편육 / 다식 / 인삼정과 />

<사진 1. (왼쪽부터 순서대로) 제육편육 / 다식 / 인삼정과>

 


소설 『미망』과 개성 음식


 19세기 개성을 배경으로 한 소설 『미망』(1995)에는 한국이 근대화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개성 음식과 음식문화의 특성이 담겨 있다. 그동안 소설 『미망』에 대한 연구는 주로 페미니즘 관점에서 여성의 삶을 조망하거나 근현대 가족사적 연구 등 인문학적 연구가 주요시되었다. 소설 『미망』을 통한 전통음식의 문화적 이해는 궁극적으로 한국음식의 문화 콘텐츠화 작업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최명희선생의 『혼불』이나 박경리선생의 『토지』는 더없이 좋은 음식문화 텍스트였다. 개성음식을 공부하는 데에는 박완서선생의 소설 『미망』이 더 없이 좋은 텍스트였다. 

 소설 『미망』은 박완서(1931~2011)의 장편소설이다. 이 작품은 개성지방을 배경으로 한 거상 일가의 삶을 그린 가족사 소설로 1990년에는 대한민국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미망』은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우리 민족사의 격동기를 모두 포함하고 있어 역사소설로서도 가치 있다. 작품의 배경인 개성은 작가 박완서의 고향이며, 작가는 자신의 체험과 경험에서 우러난 것들을 작품의 소재로 하였다. 박완서의 작품 속에서 개성은 작가가 고향에 대해 그리는 향수와 애정을 토대로 그려졌다. 이 작품은 구한말에서부터 한국전쟁까지의 시간적 과정과 개성이라는 공간을 그 배경으로 하였으며 개성의 역사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역사적인 사실에 기초하여 구성되었기에 구체적인 사실성이 확보되어 있고 정확하고 치밀한 묘사가 그 주된 특징이다.

  『미망』의 시간적 배경인 1888년부터 1953년 사이는 근대화의 물결이 밀려와 생활면에서는 새로운 문물로 인한 변화가 있었으며 나라의 국내외 정치적으로는 외세의 침입과 의병항쟁이 전개되었다. 때는 우리나라 근대화의 시작점으로 서양음식이 일부 소개되고 과자, 통조림과 같은 가공식품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며 상업화와 함께 도시 공업화에 따른 음식업 및 유통업이 급증하였다. 철도가 개통되고 전기가 들어오게 되면서 이는 개성지방의 상업과 공업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이러한 근대 산업화 과정은 주인공인 태임과 그의 남편인 종상의 삶을 통해서 드러나게 된다. 상민출신으로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난 전처만은 집을 나와 장사꾼의 뒤를 따라다니며 상업에 눈을 떠 개성의 대 부호가 된다.

  전처만의 장손녀인 태임은 이 소설의 여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고 조부의 인삼밭을 토대로 나중에는 고무공장을 세우는 데에까지 발전한다. 그리고 주로 태임을 통하여 개성음식문화가 세세하게 그려진다,  

 『미망』에서 주로 공간적인 배경이 되는 개성지방의 샛골은 전처만의 상업적 터전인 삼포가 있는 곳이며 그의 어린 시절 꿈이 실현된 곳이다. 그리고 개성은 태임이 가업을 이어가는 모태공간이자 개성지방의 상인 기질이 그대로 살아 있는 곳으로 상징된다.



19세기말 개성 음식의 특성


 개성은 고려의 수도였다. 고려시대이래로 지방으로부터 조세곡과 공납품이 상납되어 막대한 물자가 모이고 물화의 교류가 원활하게 이루어진 곳이었다. 조선시대에도 수도 한양과 인접하여 서북지방 물화의 집산지인 평양과도 통하는 요충지였다. 또 평양과 의주로 연결되는 대청무역의 교통로에 위치하여 조선시대 대청무역의 근거지이자 국내 상업의 중심지였고, 동시에 수공업 생산이 도처에 활발하게 발달하였다. 개성은 지형적으로도 기름진 풍덕 평야와 서해안을 인접하고 있어 풍부하고 좋은 품질의 음식재료가 많이 산출되었다. 예로부터 개성은 ‘개성 음식’하면 다들 알아주곤 하였던 화려한 음식문화를 꽃피운 곳이었다. 

  아래 <표>에 정리한 바와 같이, 소설 『미망』 속에는 여러 종류의 음식과 더불어 다양한 식재료가 등장한다. 북한의 전통음식을 다룬 다른 책들과 비교해 보아도 도리어 소설이 개성 음식의 폭을 더 다양하게 보여줌을 알 수 있다. 

 

표 1. 소설 『미망』에 나오는 개성 음식
주식류
主食類
밥(반飯) 된밥, 조밥, 수수밥, 깡조밥
만두饅頭 편수
병탕餠湯 조랑떡국(편수+고명), 떡국
면류麵類 국수
죽류粥類 암죽, 녹두죽, 깨죽, 밤죽, 흰죽
일품류一品類 첫국밥, 장국밥, 국밥(쇠기름살)
부식류
副食類
탕류湯類 미역국, 곰국, 괴기국, 장국, 맑은장국(양지머리), 열구자탕
찌개조치措置 시래기찌개, 호박김치지짐(제육), 암치찌개
증류蒸類 호박잎찜, 제육찜
편육片肉 제육편육
간납肝納
(누름적, 누르미)
부침개(밀가루+암치껍질), 녹두부침개, 밀가루부침개(돼지가죽+파)
채菜 탄평채, 나물, 상추쌈
적炙 제육구이, 굴비
저菹
(김치, 채소절임)
나박지, 보쌈김치, 풋고추장아찌, 호박김치, 열무김치,
겉절이, 동치미, 섞박지, 오이소박이, 깍두기
장류醬類 된장, 간장
해醢
(젓갈)
그이장(게장), 곤쟁이젓, (곰삭은)젓갈
자반佐飯 콩자반, 북어무침. 장덩이
기호식류
嗜好食類
병류餠類 떡, 송편, 약식, 떡, 주악, 치자떡, 편떡, 경단, 조랑이떡, 가래떡, 찰경단, 인절미
주류酒類 술, 막걸리, 소주, 인삼주, 탁배기
한과류韓菓類 엿, 다식, 약과, 강정, 유과, 조청, 인삼정과
과실류果實類 호도, 잣, 진귀한 과실, 제주감귤, 추리(자두), 복숭아, 개구리참외
음청류飮淸類 꿀물, 식혜, 화채, 복숭아 화채
기타 其他* 인삼, 싱아, 칡뿌리, 삘기(띠의 애순), 진달래, 송기, 송순, 송홧가루, 찔레순,
무릇, 멍석딸기, 산딸기, 까마중, 머루, 다래, 가얌(개암), 밤, 도토리
기타
其他
산후음식産後飮食 전복 ,홍합, 쇠꼬리, 돼지족발, 잉어, 숭어, 청둥호박, 석청, 인삼, 도라지, 영계, 계란, 씨암탉,
고기, 어물, 수수, 옥수수, 호박고지, 입쌀, 잡곡, 꿩, 해산쌀, 미역, 팥, 잣, 깨, 흑임자, 꿀, 어린돼지
인삼류人蔘類 인삼, 포삼, 백삼, 퇴각삼, 후삼, 미삼, 홍삼, 독삼탕(기생삼+대추), 인삼즙, 인삼정,
인삼차, 홍삼엑기스차, 인삼정과

* 소설 『미망』속 전처만이 태임에게 알려주는 야산에서 쉽게 구하여 즐겨 먹던 어린 시절 간식들

<표 1. 소설 『미망』에 나오는 개성 음식>


이 소설에서는 예를 들어 생원댁에서 쉰둥이, 즉 쉰이 넘어 귀한 아이를 보았으나 젖이 잘 나오지 않아 여러 가지 보양식을 구해 먹이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에는 전복, 홍합, 쇠꼬리, 돼지족발, 펄펄 뛰는 잉어, 숭어, 늙은 청둥호박, 심산유곡의 석청 등 온갖 음식들이 있다. 출산은 가족의 경사일뿐만 아니라 사회를 지속시키는 데에도 중요하고 성스러운 의례이다. 새로운 사회 구성원에 대한 배려는 지역과 인종을 넘어선 본능이다. 그러니 특히나 경제와 상업의 요충지였던 개성에서 산후에 젖이 나오도록 돕기 위해서 온갖 귀중한 음식들을 구해 산모에게 먹이는 것은 너무나도 본능적이고 자연스러운 장면이다. 

 조선 초기에 어의 전순의가 쓴 식이요법서인 『식료찬요』에서도 이 전통을 엿볼 수 있다. 


‘부인의 유즙이 나오지 않는 것을 치료하기 위하여 우비(牛鼻, 소의 코)로 국을 만들어 공복에 복용하며, 노루고기(獐肉)로 고깃국을 만들어 먹는다. 또 부인질환에 있어 혈과 기를 치료하고 다스리려면 굴을 삶아 먹고, 자궁출혈을 치료하려면 홍합을 익혀 먹고, 몸이 붓고 태동이 불안한 것을 치료하려면 잉어를 삶아 탕을 만들어 먹는다’

고 하였다. 또 실제로도 호박과 석청은 다양한 비타민과 미네랄 그리고 생리활성물질들이 풍부하여 산후 회복에 매우 좋은 보양식이라 하였다.

 전처만이 손녀 태임이와 함께 용수산고개를 넘으면서 용수산에 많이 났던 어린 시절 즐겨 먹었던 군것질거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에는 사시사철 먹을 것을 주었던 천혜의 자연환경에서 난 다양한 간식거리가 등장한다. 


‘산엔 사시장철 먹을 게 지천으로 있단다. 삘기, 진달래, 송기, 칡뿌리, 송순, 송홧가루, 찔레순, 싱아, 무릇, 멍석딸기, 산딸기, 까마중, 머루, 다래, 가얌, 밤, 도토리 (…중략) 할아버지 어렸을 땐 산에서 허기를 달랜 적이 많았느니라.’

 산에서 난 새순, 꽃, 열매 등은 할아버지와 손녀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추억의 연결고리이며 과거와 현재를 아름답게 이어주는 사랑의 매개체이다. 19세기말에 본격적인 근대화와 산업화가 시작되기 이전, 개성은 넓은 평야와 인근의 해안가에서 산출되는 풍부한 식재료와 막대한 물자가 집적되는 교통과 물류의 요충지이며 상업 활동이 활발한 경제도시로서 화려한 음식문화의 꽃을 피울 수 있는 곳이었다. 뿐만 아니라 깨끗하게 보존된 자연 속에서 아이들은 산천초목과 함께 호흡하며 자연이 제공하는 정서적, 물질적 혜택을 마음껏 누리며 세상에 펼칠 큰 꿈을 품고 자랄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은 소설 『미망』 속에 나오는 음식들을 토대로 하여 미망밥상을 차려 본 것이다. 우리에게 많은 소설을 남기고 떠난 위대한 여성 작가이신 박완서선생님을 추모하는 밥상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음식하는 사람으로서 이렇게 음식으로 추억하고 추모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림 1. 박완서선생님을 추모하는 밥상 /> 인삼차, 술-인삼주, 개성식혜, 호박김치찌개, 개성나물, 제육편육, 조랭이떡국, 그이장(게장), 개성장떵이, 다식(차과자), 인삼정과

<그림 1. 박완서선생님을 추모하는 밥상>


소설 『미망』은 사라져 가는 개성 음식의 아득한 기억을 오히려 가장 정확하게 소환한다. 더 이상 개성 음식을 기억하고 요리하고 먹었던 개성인들이 돌아가시고 존재하지 않은 상황에서 소설 『미망』은 그 어떤 것보다 우리에게 개성 음식이 가지는 가치와 의미를 알려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역시 문학이 가지는 힘이 음식문화에서도 크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낀다.




정혜경 교수  - 호서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 ‘채소의 인문학’ 저자  - 한국식생활문화학회 회장과 대한가정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농림축산식품부의 식품산업진흥 심의위원과 한식 자문위원으로 있으면서 우리 음식 알리기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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